독립운동 증조부님 명예 찾기(1) (2) (3)
작성자 : 정병기 등록일시 : 2011-09-15 07:4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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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증조부님 명예 찾기(1)
2011년 01월 05일 (수) 경남매일 webmaster@kndaily.com
일제강점기 항일독립운동 하신 증조부 독립운동 자료 찾아 36년세월 노력
   
▲ 정 병 기 시민 칼럼니스트

 새해에는 반드시 나라와 민족의 독립운동을 하신 증조부님 명예를 찾아 가묘라도 국립묘지에 안장시켜 자손된 도리를 다하는 일입니다.

 지난 35년간을 증조부 독립운동 관련 자료를 찾는데 동분서주해 왔으나 아직까지 결실을 보지 못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일제의 만행으로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해 구천을 맴도는 증조부님의 영환을 편하게 해드려야 하는 것이 자손된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새해에는 소망대로 좋은 일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증조부님의 독립운동으로 집안은 풍비박산, 자손들은 뿔뿔이 흩어져 머슴살이나 처가살이를 전전하며 고생을 하고 살았습니다.

 배움에서 멀어지고 살기에 고통스러웠으며 일제의 모진 감시와 탄압, 그리고 박해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답니다. 누가 그런 고통을 알수 있겠는가?

 증조모님은 일제의 모진 고문과 압박 감시에 집안의 주선으로 성을 개명하여 인동장씨 집안으로 개가하셨답니다.

 지난 35년을 증조부님 독립운동 자료발굴에 힘써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연을 관심있게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미발굴 독립운동하신 가족들 눈물겹게 자료를 찾고 있습니다. 아시는 것이 있으시다면 지원해 주시고 도움을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증손자라도 찾지 않는다면 끝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실것입니다.

 행정심판에 각종 사연이 언론에 공개되고 보도되어도 진전이 없는 증조부님의 옥사기록은 어떻게해야 하는가 말입니다. 일본놈들에게 공짜로 옥사를 했다는 이야기인가요?

 정말 죽도록 나라위해 독립운동하신 독립운동가는 자손이 없거나 무지해서 찾지도 못하는 실정입니다. 이제 죽어서 그분들을 다 만나게 될 것입니다. 부끄럽지 않은 동지가 되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사망기록 호적이 있어도 인정해 주지않은 현실이 안타깝고 야속한 심정입니다.

 국민 여러분 그리고 공직자 여러분! 관련 학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증조부의 고향이자 부친의 고향인과 국민 여러분의 도움을 받고 싶습니다. 증조부님이 경북 봉화군 춘양면 도심리에 살고 계시다가 독립운동으로 투옥되어 서울 경성형무소에서 옥사하셨습니다.

 증조부님의 명예회복을 통하여 자손도리를 다해야되겠다는 신념과 의지로 여러분께 글을 올려 드립니다. 이제 증손자인 제가 찾지 않는다면 영원히 찾을 사람이 없게 될 것입니다. 그냥 사장되고 말것입니다.

 사망기록:제정호적에 소화3년5월20일 오후3시20분 경성형무소 감방(서기1928년 5월20일오후3시20분사망)형무소에서 통지해 호적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는 국가유공자의 한 사람으로 있는 고 정용선 옹의 증손자입니다.

 자나깨나 증조부의 명예를 회복하려고 지난 35여년 세월을 자료를 찾아 전국을 헤메며 다니고 있습니다.

 젊음을 국가와 민족의 광복을 위하여 받치신 증조부의 명예를 회복하여 자손된 도리를 다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주위에 이러한 사실을 알고 계시거나 아시는 자료가 있으시다면 도움 좀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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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증조부 명예찾기(2)
2011년 01월 06일 (목) 경남매일 webmaster@kndaily.com
독립운동 옥사기록 선명해도 부족한 것은 모두 후손탓이라니?
   
▲ 정 병 기 시민 칼럼니스트

 분명히 경성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다가 사망한 기록이 제적등본에 자세하고도 세세히 기록되어 있는데도 국가보훈처에서는 또다른 자료를 요구하는 것에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경성형무소가 6.25사변에 불이 나서 소실된것이 왜 가족들에 책임입니까? 그자료를 제대로 관라하지 못한 정부의 책임이 분명한데도 말입니다.

 힘없는 가족에게 자료를 요구하지 말고 국가보훈처에서 자료발굴 노력을 경주하여 진정한 독립유공자를 발굴하려는 노력을 기울려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 제출된 자료에 대하여 덮어 놓고 방치하지 말고 관심을 가지고 자료에 대하여 다시한번 검증을 하여 주실 것을 아울러 간곡히 당부를 드립니다.

 민원을 제기한 가족에 입장에서 한번 생각보시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가족들은 긴세월동안 많은 풍지평파와 고난의 세월을 살아왔음을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많은 애국지사와 애국선열들이 흘린 피의 댓가와 노력으로 오늘에 대한민국의 발전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국가보훈처장관님께서는 혹시 경성형무소인 현재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보셨는지요. 그자리가 악명 높다던 경성형무소입니다.

 저의 증조부께서 바로 그자리에서 생을 마감하신 자리이기에 일년에 몇번 그곳을 찾습니다. 가슴이 미어 터지는것 같고 분통이 터집니다. 가슴이 답답한 심정입니다.

 왜 이렇게 이런 편지를 국가보훈처에 써야 하며 외쳐야 합니까? 국가보훈처에서는 세심한 관심과 배려가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번에 저의 증조부 고 정요선 할아버지의 자료를 재검토하여 보시기를 간곡히 당부드립니다. 국가보훈처에서 하는 `독립유공자 후손찾기` 구호만 요란스럽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35 여년째 증손자가 노력하고 있답니다. 제발 귀를 기울려 주셨으면 합니다.남의 일로만 생각지 마시고 관심가져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증손자도 국가를 위해 희생한 국가유공자랍니다. 저는 저의 증조부(고 정용선)독립운동에 대한 자료발굴과 명예를 회복하기 위하여 20여년을 노력해 왔습니다만 아직까지 결실을 보지 못하고 있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정호적원부에 수형기록과 사망기록이 있슴에도 판결문을 찾지 못하여 인정받지 못하고 있어 정부의 결단이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희 부친은 문맹인으로 살고 계시며 평생 어렵게 할아버지도 일찍 일제피박에 돌아 가시고 고아 아닌 고아로 어렵게 성장하여 오늘에 이르신 분이십니다.

 이미 저의 증조부자료에 대해서는 국가보훈처에 제출한지 오래이며 민족의 비극인 6.25사변 으로 인하여 경성형무소가 소실되고 지방에 본적지 면사무소가 소실되어 더이상의 자료를 수집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번에 행심 각하의 따뜻한 관심이 애타게 조상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후손들에게 큰힘이 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자세한 자료는 국가보훈처 자료관리과 또는 선양과에 있습니다. 좋은 소식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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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증조부님 명예 찾기(3)
2011년 01월 07일 (금) 경남매일 webmaster@kndaily.com
   
▲ 정 병 기 시민 칼럼니스트


 정부는 미발굴독립유공자 문제해결에 앞장서야 한다.

 진정한 독립운동가 집안은 일제의 의해 풍비박산ㆍ후손들도 뿔뿔이 흩어져 머슴살이를 전전.

 일제시대 경성형무소 현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한 증조부가 독립투사였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 국가를 상대로 36년째 지루하고 고독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정병기(54) 양평군 지평면 옥현2리. 증조부 경성형무소 옥사기록 일제가 만든 제정호적에 형무소 계출문 기록 기재.

 그는 광복 66주년인 올해도 어김없이 아픈 몸을 이끌고 방방곡곡을 누비고 있다. 증조부가 독립투사였다는 사실을 입증할 만한 단서만 있다면 만사를 제쳐두고 어느 곳이든 달려간다. 부양할 가족도 있고 몸도 성치 않지만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증조부와 일제로부터 모진 탄압을 받았을 조상들을 생각하면 도저히 그만 둘 수 없다.

 증손자는 아버지와 친척 등의 증언을 종합하면 증조부인 정용선1883년생 선생은 1900년대 초부터 1916년까지 고향인 경북 봉화군을 중심으로 독립군 군자금 모금 활동을 했던 독립운동가가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정용선선생의 증손자에 따르면 독립 자금을 모으기 위해 친일파의 집을 털고 일본 주재소를 습격하는 등 위험천만한 활동을 서슴지 않았다는 그의 증조부는 1916년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고 10년 가까이 지난 1928년 경성형무소에서 옥사했다는 통지서 한통만 날아왔다. 증손자는 당시 반일 활동가를 가두던 경성형무소에서 장기복역하다 숨졌다는 것 자체가 증조부가 독립운동에 헌신하다 희생됐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또 증조부로 인해 일제로부터 모진 탄압을 받자 이를 견디지 못한 일가친척들이 증조부 이름을 족보에서 파버렸고 증조부가 실종된 후 일제의 화가 미칠까 두려워한 가족들이 나서서 증조모를 개가시켰다는 사실은 독립운동을 했음을 뒷받침하는 명백한 정황증거라고 강조했다. 실제 호적등본을 보면 증조모는 독립투사의 아내였던 것을 감추기 위해 본명인 박열이에서 정열이로 개명까지 했다. 그러나 발각되어 굶어 돌아가셨다.

 그러나 일제가 만든 호적에 증조부가 경성형무소에서 병으로 사망했다는 기록 외엔 독립운동에 가담했다는 것을 증명 할만한 서류는 남아있지 않고 다른 기타 관련 서류는 6.25사변에 불타거나 지난 1980년 형의 실효에 관한 법률로 소각 정리했다는 관보가 있다.

 국가보훈처는 물론 국가권익위원회 청와대에까지 서류를 안 내밀어 본 곳이 없지만 객관적인 입증자료가 없어 독립유공자로 선정할 수 없다는 답변뿐이었다. 그는 국내에서 안 되면 외국에서라도 찾아보자는 생각에 1993년 미국 의회도서관에 편지를 띄워 수형인 명부가 담겨 있을지도 모르는 마이크로필름 500장을 200달러를 주고 사오기도 했다. 일본 외무성에 수차례 서신을 띄우기도 했지만 안타깝게 결정적인 사료를 찾는 데는 실패했다. 지난해엔 국가를 상대로 행정소송까지 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정용선의 증손자는 일제시대 형무소 수형인 기록을 정부가 지난 80년 12월 실수로 모두 불살라버렸던 정부가 이제 와서 독립운동으로 수감됐다는 걸 증명할 문서를 가져와야 독립유공자로 인정해준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더욱이 일본 외무성은 1995년까지 조선인 수형인 명부를 보관했지만 우리 정부는 단 한번도 그 서류를 요청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증손자는 할아버지는 탄광에서 일하다 폐병으로 숨졌다. 증손자 자신은 경찰관으로 근무하던 지난 1980년 강도 살인범을 붙잡다 부상을 당했다. 당시 후유증에 간경화로 지금도 고통을 받고 있다. 앞으로 찾을 날도 멀자 않은 것 같다.증조부의 진정한 애국이 제대로 평가받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증손자는 독립운동가를 찾는 일을 후손들에게만 떠넘기는 정부가 야속하지만 어디엔가 분명히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있을 거라 믿는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제 정부는 일제강점기 나라의 독립과 광복을 위해 싸우다 옥고를 치루거나 옥사하신 미발굴독립유공자 애국선열 발굴에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관련 옥사기록 등 제정호적에 대하여 세심한 검토를 통하여 명에를 찾아주는데 앞장서야 하며 그 후손들의 눈물도 닦아줘야 할 것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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