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민족운동사연구, Vol.93 (2017)
pp.5~38

『한성신보』의 고종과 명성황후에 대한 인식과 평가

장영숙

(상명대 글로벌인문학부대학 교양학부 교수)

일본의 관변언론지인 『한성신보』는 일본정부의 조선인식과 궤를 같이 하며 자국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었다. 고종과 명성황후에 대한 이미지를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고 있었으며, 두 사람과 대원군간의 갈등을 비롯해 조선사회에 떠도는 소문들을 여과 없이 게재하였다. 그에 따라 매관매작과 뇌물이 횡행하며 부정으로 얼룩진 사회, 무속에 빠져 부패 타락한 사회의 혼란상이 확대ㆍ유포되었다. 조선 내에서도 당시 부정부패에 대한 사회적 문제의식과 공감대는 형성되어 있었다. 다만 국가의 향방과 개혁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내부의 치부를 드러내고 있었다면, 신보에서는 일본의 침략정책을 돕는 일환으로 부정적 이미지를 악의적으로 노출시키고 있었던 점이 대비된다. 신보는 1895년에 창간된 신문이면서도 개항과 1880년대 초반에 추진된 조선의 개화정책에 전폭적인 찬사를 보내고 있다. 조선이 근대로 나아가는 전환점을 맞이하는데 일본이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초기개화정책에 대해서도 일본의 가르침과 시혜의 결과물로 간주하였다. 국왕 내외에 대해서는 일본의 평화주의와 같은 맥락의 개국주의자라며 대원군의 시대착오적인 쇄국정책과 대비하여 높이 평가하였다. 신보의 서술태도는 을미사변을 계기로 확연히 달라진다. 강화주의자라며 칭송일변도였던 고종에 대해서는 간신배에 둘러싸여 리더십의 총체적 약화를 보이는 무능한 군주로 평가하였다. 삼국간섭과 인아거일정책으로 일본의 조선 보호국화 기도가 장벽에 부딪치자 을미사변을 기획하면서 의도적으로 만들어간 표상으로 보인다. 아관파천에 대해서도 ‘있을 수 있는 일’로 받아들이던 조선 측의 태도와는 달리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며 그 부당성을 지적하였다. 황후는 일본의 입장에서 을미사변을 일으키게 된 주요 요인임과 동시에 표적이 된 인물이기에 평가와 인식이 좋을 리 없었다. 황후는 부정부패로 얼룩진 민씨일족과 연계되어 청산의 대상이 되었다. 신보에서는 국왕의 총명을 가로막고, 관리들로 하여금 매관매작의 줄을 서게 만든 주범이 곧 황후라는 소문을 유포시켜 나갔다. 무속인 진령군의 소식을 추적 보도하면서는 무속에 빠진 타락한 황후의 표상과 임오군란 중에 도망친 황후의 부덕함을 새기게 함으로써 황후에 대한 숭모감을 제거해 나갔다. 비슷한 시기 발간된 『독립신문』이 문명한 인민을 위한 계몽 차원에서 무속경계론을 펼치고 있었던 것과는 대비되는 점이다. 일본은 근대정치무대의 주역이었던 두 사람에 대한 악의적 신문보도를 통해 한성 내 일본인들에게는 일본의 우월적 정치문화 수준과 문화적 차이를 은연중 내포하고, 조선인들에게는 이를 통해 상대적 열패감을 심어주고자 하였다. 결과적으로 일본은 조선 민중의 불만을 정부로 향하게 하고, 정부에 대한 신뢰 보다는 실망의 깊이를 더하게 함으로써 내적 균열과 분열을 유도하는데 목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신보는 철저하게 일본정부의 정책을 홍보하고 정부의 의도대로 여론을 형성해 나가면서 이미지 정치에 앞장선 도구였다고 할 수 있다

Perception and evaluation about the emperor Gojong and the last empress by Hansung Shinbo

Jang, Young-sook

The Japanese press, Hansung Shinbo has induced the image about the emperor Gojong and the last empress in a specific direction. Accordingly, the image of the society tainted by the corruption and where spoiling of the system and bribes are prevalent and the confused image of the corrupted and degraded society which has been indulged in shamanism has been expanded and distributed. Inside Joseon also, the social sense of problem and sense of sympathy about the corruption was formed. The only difference is that Joseon was inventing the nation's further direction and innovation scheme and was exposing its embarrassing part, and Sinbo was exposing the negative image maliciously as a way of helping Japanese invasion policy. The narrative attitude of Shinbo which used to send compliment to the enlightenment policy of Joseon which was promoted in the beginning of 1880 and along with the ports opening changed around the time of Eulmi incident. It has evaluated Gojong, who was all praised as an advocate of peace, as an incapable emperor who showed weakening holistic leadership being surrounded by the retainers. As the prayer for making Joseon as a protected state confronted barriers due to the three Kingdoms intervention and Bringing Russia to Defend against Japan policy, it tried to make an image intentionally while planning Eulmi affairs. It also has said that it was very shameful thing differently from the attitude of Joseon which accepted the Korea royal refuge at the Russian legation as 'what can happen' and pointed out the unfairness. Since the last empress was the character who was the main factor and target which caused the Eulmi affairs on Japan's side. The evaluation and perception about the last empress can not be good. The last empress was connected to Min's whole family who was tainted with corruption and thus became an object for removal. Shinbo has distributed a rumor that it was the very last empress who was the main character in making rows of spoiling the system by the officials and blocked the intelligence of the King. As it was pursuing and reporting the news about the shaman, Jinryeonggun, it tried to grave the symbol of the last empress who was corrupted indulged in Shamanism and the immorality of the last empress who ran away during the Imo incident and tried to remove the yearning for the last empress. It is compared with the fact that the Tongnip Sinmun was parading the anti-Shamanism from the enlightenment point of view for the civilized people which was published around the same period. Japan wished to implant the cultural difference of Japan and its superior political culture level into the Japanese people inside Hansung and implant the relative feeling of failure in Joseon people through the malicious newspaper report about these two people, the main characters of stage of the modern politics. In conclusion, Japan has made the complaints of people of Joseon go toward the government and deepened the depth of the disappointment about the government rather than a trust in it to eventually induce internal divi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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